이슈+|설리 떠난 뒤…악플 방지 묘안 없을까

입력 2019-10-19 08:46  


꽃 같은 나이에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 스물 다섯, 설리의 극단적 선택에 대중은 쉽게 충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 발인식이 엄수되어 설리는 세상에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설리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결코 혼자만의 선택이었다고 말 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설리는 그동안 많은 악성댓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난 설리의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악플이 주요 원인 중 하나 일거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무서워서 숨어버릴 수 있었지만 노브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설리, '악플의 밤' 중에서

고(故) 설리는 설리는 SNS에서 파급력이 높은 '셀러브리티' 혹은 '트러블메이커'이기도 했다. 그는 매번 자신을 둘러싼 편견과 싸웠다.

고인은 2005년 SBS TV 드라마 '서동요'로 데뷔해 2009년 SM에서 f(x) 멤버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f(x)는 '라차타'(LA chA TA), '누 에삐오'(NU ABO), '핫 서머'(Hot Summer) 등 일렉트로닉 계열 히트곡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또 SBS TV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2012)와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패션왕'(2014)·'리얼'(2016)에 출연해 배우 활동도 병행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악성 댓글과 루머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면서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2015년 8월 f(x)에서 탈퇴하고 연기자로 전업했다. 지난해 10월 리얼리티 프로그램 '진리상점'을 통해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6월 전곡 작사에 참여한 싱글음반 '고블린'(Goblin)을 냈고, 8월 '절친'인 아이유 주연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도 특별 출연했다. 드라마 출연 후 설리는 "악성 댓글이 없어졌다"라며 "제가 잘 한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스타들이 악플에 대한 속마음을 밝히는 JTBC2 예능 '악플의 밤' MC를 맡아 활동했고, 영화 '페르소나 2'를 통해 스크린 컴백도 앞두고 있었다.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계속 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른바 '노브라' 사진을 올리는 등 자신의 소신에 대한 거침없는 태도를 보여 이슈의 중심에 섰다. 관련 내용이 연일 보도됐지만 설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당당해서' 설리를 응원했지만, 어떤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하지만 설리는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포스터를 올리는 등 선한 영향력을 떨치기도 했다. 일본 네티즌들로부터 악성 댓글 폭격을 맞았지만 의연히 대처했다.

부고가 전해진 뒤 설리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질병관리본부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심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뇌질환이다.

주요 증상은 지속적으로 우울감을 느끼고 의욕이나 흥미가 크게 떨어진다. 불면증 같은 수면장애뿐만 아니라 식욕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급증하는 증상을 보인다. 자살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며, 심한 경우 직접 시도하는 일이 벌어진다. 환자들은 건강한 시절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많아지고 불필요한 죄책감도 느낀다.

"설리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한 우울증 환자는 "다들 우울증이 뭔지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가족들과 평소 같이 웃으며 지내다가 샤워할 때, 운전할 때, 자기 전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악플러 고소를 한 번 해봤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유명한 대학에 다니는 동갑내기 학생이더라고요. 선처하지 않으면 빨간줄이 그어진다고 하고, 취업할때도 문제가 생긴다고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와 선처를 해줬어요."

-설리, '악플의 밤' 중에서


'악플의 밤'에서 설리는 악플러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너무도 평범한 악플러의 존재를 확인하고, 설리는 공인으로서의 아량을 배푼 것이다. 팬들은 설리의 죽음 뒤 "차라리 다 고소하지 그랬냐"며 한탄하기도 했다.

악플수사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서의 한 사이버수사관은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 대부분 전과 없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악플러들은 자신이 과거 작성한 댓글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는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악플'을 단다.

실제로 한 경찰관에 따르면 20대 남학생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했다가 조사 받으러 왔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증거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해당 글을 썼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스마트폰, SNS 등이 광범위하게 발달하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악플 때문에 입건되는 사람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경찰 관계자는 이같은 환경이 악플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키웠다고 설명한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나를 보면 재밌지 않을까. 재밌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댓글을 보면 좋은 아이디어와 신박한 것들이 많아요. 그런 에너지를 악플에 쏟지 않았으면 해요."

-설리, '악플의 밤' 중에서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발생 건수는 1만5926건이다. 전년 대비 약 19.3% 늘었다. 올해는 8월까지 1만928건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악플러들이 대체로 사회적 관계가 좁고 억눌린 감정을 가상 공간에서 풀기위해 익명성을 악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상 악플러는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형법상 모욕죄 등을 적용해 처벌이 가능하다.

명예훼손의 경우 사실·거짓 적시에 따라 3~7년 이하의 징역, 3000만~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그동안 악플 등 사이버테러 사안은 경미하게 취급되어 왔다. 이 때문에 정식기소가 되지 않아 재판을 받을 수 없고 약식기소로 벌금 선고 혹은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악플의 폐혜를 줄이려면 확실한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악플을 달면 반드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생기면 가해자들도 압박감을 느끼고 자제하게 될 것"이라며 "처벌 수위를 높이기보다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설리가 사망한 뒤 정치권에서는 소위 '설리법'으로 불리는 '악플방지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인터넷 게시글 등으로 인한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모욕 등의 행위를 방지하려는 목적의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여러 건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관인 이들 개정안은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에게 불법 정보의 유통을 막을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길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이 큰 골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017년 10월 관련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이용자·매출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사이트 운영자에게 불법정보 감시 의무를 지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과징금이나 이행강제금 등을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해 4월 발의했다. 김성태 의원의 법안보다 처벌 수위를 한층 높였다.

사이트 운영자에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의 유통을 막을 의무를 지우고, 불이행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게 이 의원 개정안의 내용이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5월 법정 '불법정보'의 정의를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이들 법안에 대한 과방위 심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멈추지 않고 악플을 근절시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온라인 매체의 무분별한 보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업계에서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의 기사들이 악플을 부추긴다며 자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매 순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고, 그들 덕분에 웃었고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저는 여러분께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모두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고, 앞으로도 미우나 고우나 잘 부탁드려요."

-설리 인스타그램 발췌

데뷔 14주년을 맞아 쓴 이 편지는 설리의 마지막 인사가 됐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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